감정보다는 상황에 대한…

2007/10/27 – [나의/일상] – 소닌(성선임) 양의 감정을 통해 눈물을 흘리는 필자이지만 어제는 냉정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무슨 소리인가하면 어제 학교에서 수업을 모두 마치고 지하철을 타기위해 응암역으로 들어갔는데 응암역 근처에 있는 신사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설문을 하고, 점검해 주는 행사(?)를 했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밖에 안 걸릴 듯해서 시작했는데, 검사지에 응답을 하고 응답한 항목들의 수를 세어 적어 담당자의 앞에 갔더니 A, B, C, D, E항목을 보면서 풀이해주었다.

전부 이야기해주지 않고, 제일 낮은(1개) A항목과 굉장히 높은 편(8개)에 속하는 D와 E항목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주었는데, 필자가 예상하기로는 A는 남을 배려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고, D와 E항목은 남에게 얼마나 냉정하게 대하는가에 대한 것 같았다.

D항목은 무려 8개나 나왔는데 이 항목을 이야기하면서 감정보다는 상황을 중심으로 한 행동과 판단을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들을 배려해 줄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아!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싶었다.

물론 이런 성격이 된 것은 스스로에 대해 적극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했던 지난날의 바람이 심하게 이루어진 탓이라고 해야할 듯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MBTI를 했을 때 분명히 I형으로 나왔었지만 최근의 성향에서는 E형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통해 성격이 변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되새김하였다.

고등학교에 접어들면서 내성적이고 수동적인 성격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노력해 왔는데 결국엔 성격이 바뀌어서 지금의 복학한 학교생활에서 필자가 내성적이었다는 것을 알거나 믿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아니기 위해서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말하기 위해서는 직선적인 것이 필요했고 그런 성향은 점차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결국엔 위의 사회복지관의 검사의 결과와 같은 평가가 나온 것이다. 어제(26일) 집에 와서 바로쓸 생각이었지만 뭔가 내키지 않았다.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은 필자가 다시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결심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해도 무관하다.

지금의 외향성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 처럼 말이다.

상처를 주는 것은 쉽지.

파랑새를 찾아서 – 용기를 주는 말이라는 포스팅을 읽는 중에 ‘이 사람들이 보는 눈이 없네’ 라는 부분에서 김제동씨와 관련된 사건(?)이 생각났다.

야심만만에서 여러가지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는 건 다들 아실겁니다. 그 중에서 회사 면접과 관련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데 그 때 김제동씨가 자신이 당했던 얘기를 했고, 강호동씨가 그 사람에게 한 마디 해 달라고 하여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김제동씨는 섭섭하다는 정도를 넘어서 울분에 섞인 목소리와 붉어진 얼굴로 화면을 노려보면서

“그 때 그 인사 담당자분 진짜 실수하신겁니다!”


라는 식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 회사에서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거겠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얼마나 심하게 말했으면 그랬을까라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다보면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도 많고, 그렇게 주고나서 알게 된다면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용기를 줄 수 있는 말을 하는걸 어색해 한다. 특히나 한국사람들이 더 그런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사람은 부정적인 것에 더 강한 습득력이나 익숙함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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